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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미지의 암흑 세계로 가야 한다거나, 내세의 모습이 명확하지 않아 너무나 불안하다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은 두려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죽음을 가장 고약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데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죽음은 아무리 용감한 사람에게라도(하늘에서 기이한 보증이라도 얻지 않는 한) 놀랍고도 두렵기 짝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오랜 시대적 흐름에서 누적된 인간의 생각이나 공상이 산물로서 지옥의 처참한 광경을 운운하므로, 죽음에 대해 본래부터 갖고 있던 의혹이나 불투명성이 한층 더 과장되어 있는 것이다. 설사 이와 같은 보복이나 천벌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죽으면 소멸되어버린다는 생각이 지옥 이상으로 인간을 두렵게 만든다.

 

그런데 죽음에 대해 무엇이 두렵다는 말인가? 사람들은 흔히 "오, 죽을만큼 무서웠다"고 말한다. 설사 죽음이 두렵다고 하더라도 평생에 단 한 번밖에 오지 않는 것이므로 그때 두려워하면 되고, 평상시에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대지(大地) 자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괴로워하고 있다. 아니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괴로워해 온 것이다. 큰 홍수나 지진으로 전 민족이 멸망한 예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조그마한 육신의 멸망을 무엇 때문에 그처럼 두려워 해야 하는가? 어자피 죽을 수밖에 없는 목숨이며, 주위의 모든 생물들도 다 사멸할 운명에 놓여 있는 이상 나에게 마지막 숨을 거둘 차례가 돌아왔다고 해서 어찌 그것을 두려워하겠는가? 죽음에 대한 공포로 말미암아 우리는 비겁해지고, 또 우리가 지니고 있는 생명을 곤혹에 몰아넣거나 파멸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모든 사태를 악화시키고 뒤흔들어놓는다. 우리는 다만 시시각각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에 의지하고 있으면 된다. 따라서 죽게 되면 죽어야 한다. 언제? 그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죽음은 자연의 이법으로, 생명이 빚어내는 모든 악을 소멸시키는 좋은 약이다. 죽음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아이들이 도깨비의 가면을 보고 줄행랑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을 발가벗겨 보자. 그 여러 가지 도구를 제거해 보라. 포화(砲火)나 단두용 도끼, 감시나 사형집행자, 곤장, 고문 도구, 그 밖의 죽음과 함께 닥쳐오는 모든 광경을 제거해버리면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제 우리 집 노예 한 사람이 죽음을 태연스럽게 맞이하였다. 죽음의 고통 같은 것은 결석증으로 인한 발작과 견주어보더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설사 그 고통을 참는다고 하더라도 별것이 아니며, 또 설사 그것이 참기 어려울 정도로 괴로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한순간의 일이다. 요컨대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책무 중에서 죽음이 가장 손쉬운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려면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리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실로 잠깐이다. 우리 생애에서 어느 때 죽던지 그것을 부당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실로 신체와 영혼의 이별은 1분이면 족하다. 이처럼 짧은 시간 내에 끝마치는 일을 오랫동안 두려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죽음의 예측과 삶의 참상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이와 같은 삶의 참상은 왕후도 거지도 한결같이 면할 수 없는 인류의 공통된 것이므로, 우리는 이에 대해 마음을 철석같이 무장하고 있어야 한다. 

 

보잘것없는 자기 개인의 죽음을 마치 천지가 무너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망상에서 오는 허영이라고 하겠다. 현자나 용사는 벼락이나 폭풍우 또는 지진 따위에는 꿈쩍도 하지 않으며, 어자피 빠져들어가야만 하는 심연(深淵)이라고 생각되면 아마도 자진해서 그 속에 뛰어들려고 할 것이다.

손에 박힌 못을 떼어내거나 잘못 삼킨 파리 한 마리에 의해서도 목숨을 빼앗기는 일이 있다. 원래 죽음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며, 살인 도구가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보이더라도 문제시할 것이 못 된다.

 

삶은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삶 자체를 멸시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구태여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더라도 우리를 낳은 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삶에서 떠나게 하고 있으니, 우리의 앞길에는 더 바람직하고 더욱 안전한 어떤 장소가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모래 시계의 남은 마지막 한 알의 모래는 시간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생애의 마지막 호흡은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종말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우리가 삶을 원하는 것보다 더욱 간절히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죽음은 때가 되지 않았는데 앞질러 구하기보다 때가 되었을 때 기꺼이 받아들일 일이다.

 

인생은 마치 항해와 같으며, 인간은 언제나 배멀미 때문에 엎치락 뒤치락하면서 서로 충돌하고 있다. 아니 때로는 난파도 당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위험 속에서 시달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런데 난파가 항해하는 도중에 일어나건, 나중에 일어난건 어자피 마찬가지가 아닌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노년의 삶을 두려워함과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일이며, 결국은 삶 자체를 두려워함과 같다. 죽음은 삶의 조건이므로 죽기 싫으면 처음부터 세상에 숫제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나을 법하지 않은가. 어자피 분명히 닥쳐올 것을 두려워함은 어리석은 일이며, 확신이 서서 의문이 완전히 사라지면 공포가 침범할 여지는 없게 된다.

 

결국 죽어야 하는 것이라면 죽어야 하며, 일찍 죽거나 더디 죽거나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수를 누리는 것은 운명이 할 일이라면, 단명이라도 충분한 의의가 있게 하는 것은 도덕이 할 일이다. 

인생은 그 행위에 따라 평가해야 하며 시간으로 계량할 성질의 것이 못 된다. 인간은 30세에 죽어도 노인 못지 않게 성숙할 수 잇고, 80세의 장수를 누려도 어리석은 어린이에 불과한 경우가 있다. 

 

우리는 모름지기 자기 본분을 잘 지키도록 힘쓸 일이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죽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상 언제나 또 어느 곳에서나 죽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단지 각오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죽음을 이모저도로 깊이 따지고 캘 필요는 없는 것이다. 죽음은 실험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따져 본들 알 수 없는 것이다.

 

죽기 전에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축복 가운데 죽음을 기다린다는 것은 더욱 큰 축복이다. 즐거운 생애를 보내다가 태연히 죽을 수 있는 사람은 위인의 소질이 있음이다. 의롭고 올바른 삶은 물론 바람직하지만 의롭고 올바른 죽음보다 더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 수많은 용맹한 젊은이들이 자연의 본능에 따라 모든 재앙을 멸시하면서 위대한 업적을 세웠던 것이다. (이것은 청년 시절에 이미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위인의 소질이다.)

 

인간은 죽음의 주위에 있는 거짓에 놀라지만, 죽음 자체의 본질을 놓고 생각해 보면 의외로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죽음은 그 불가피성으로 하여 인간에게 용기를 주는 것으로 그 죽음이 서서히 다가올 때가 우리로서는 가장 괴로운 것이다.

보라, 일단 결투에 나설 때에는 비겁하던 검사도 치명상을 입으면 유유히 가슴을 열어젖히고 상대방의 검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은 죽고 싶지도 않고 살고 싶지도 않다고 하는데, 이런 얼치기가 가장 가련한 존재다. 다만 이것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영원히 노예를 면할 길이 없으며, 죽음을 무시하는 자라야 분명히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세네카 (행복론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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